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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 표지 사진/자료=서울시]

고종대 경복궁 중건의 역사상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이 발간됐다.

9일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이번에 발간한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 소장된 ‘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새로 발견된 내용과 흥미로운 주제들로 구성됐다. 이강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를 비롯한 국내의 건축, 역사, 미술사, 국문학 전문가 등 다양한 집필진들이 15개의 주제로 고종대 경복궁 중건의 역사상을 안내한다.


중건된 경복궁의 건축적 특징을 비롯해 원납전과 인력동원의 실상, 부정행위들, 공사 현장의 노동자·장인·관리자, 중건의 당위성과 공사 독려의 허실을 보여주는 노래, 첨단 기술과 공법의 사용, 기원과 열망을 담은 상량과 각종 상징물에 관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고종대 경복궁 중건은 정치·경제·사회사적 측면에서 분석돼 왔다. 역사적으로 중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실상에 접근할 수 없었다.

‘경복궁영건일기’는 고종대 경복궁 중건 전 과정을 기록한 공사 일지로, 이전까지 알 수 없었던 경복궁 중건의 현장 모습과 분위기를 보여준다.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에 수록된 15개의 일화는 경복궁 중건 현장의 미시적 접근이자,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새로운 역사라고 편찬원은 설명했다.

경복궁 중건 공사과정에서 발생한 부정행위 기록

기록에선 특히 경복궁 중건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행위들은 예나 지금이나 대규모 토목 공사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국가의 막중한 공사를 방해한 부정행위들’은 경복궁 공사현장에서 일어난 장인의 일탈, 자제 조달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 중간에 끼어든 각종 농간과 토색질, 원납전 및 당백전으로 인한 문제, 환표를 비롯한 금용 사기 사건을 소개했다. 현장에서 궁궐에 쓸 못을 몰래 빼돌리다가 적발된 석수, 품삯만 받고 땡땡이 친 일꾼들, 겨울 부실공사로 붕괴된 신무문 일대의 담장이 문제되기도 했다.
 
공사 현장 주변에서는 일꾼들에게 밥을 파는 밥집 주인이 밥값을 미리 받아 챙기고 가게를 철거해서 도망간 경우도 있었다. 지방에서는 하급관리들이 영건에 쓸 거라 사칭하고 토색질하거나 상납할 물건들을 밀매하고, 재료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는 배를 무작정 붙잡아놓고 뇌물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경복궁 공사 과정의 부정행위 뿐 아니라, 1866년 발생한 병인양요도 경복궁 중건 공사를 방해했다. ‘경복궁 공사의 지연, 화마(火魔)와 서양오랑캐의 습격’에서는 병인양요가 경복궁 중건공사에 미친 영향을 다뤘다.

기록에 따르면 궁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1866년 8~10월, 프랑스 함대는 조선의 연안 측량을 시작으로 강화도를 침략했다. 당시 조정에서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고종은 중건 공사를 강행하며 내부결속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전쟁의 여파는 물자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점령하면서 강화도에서 경강으로 들어오는 뱃길이 막혔다. 어쩔 수 없이 수원 지역 포구에 목재를 정박시켜 놓고서 전쟁이 끝나는 10월에야 운송을 재기할 수 있었다.

또 강화도가 점령되고 언제 외적이 도성으로 진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영들이 맡았던 모든 작업이 사실상 멈췄다. 석재 채취, 수레 제작용 목재 수급, 철물 확보 등 작업은 병인양요가 지속된 기간 동안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오늘날 경복궁과 근정전/자료=서울시]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에는 조선 초에 세워진 경복궁처럼 전각에 청기와를 사용하려고 시도한 흔적도 기록됐다.

‘당대 첨단 기술과 공법으로 다시 세운 경복궁’에서는 경복궁 중건 당시의 기술과 공법 가운데 기와에 주목했다.

청기와는 조선 초 경복궁을 창건할 때 근정전과 사정전에 사용한 특별한 기와였지만 그 제작 기술이 끊긴 상황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경복궁 중건 당시 이를 재현해 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기그릇을 만드는 흙으로 조성하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일반 흙을 사용하고 안료를 발랐더니 색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청기와를 시험 삼아 제작해 보는데 기와 1장당 8냥의 돈이 들었다고 한다. 경복궁 주변 민가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기와집 1칸 당 10냥, 초가집 1칸 당 5냥을 보상했으며, 흥선대원군이 공사장 인부들에게 소 4마리를 사서 잔치를 내려주는데 비용이 700냥이었다. 그러니 대략 청기와 1장이면 기와집 1칸 또는 초가집 2칸을, 청기와 20장이면 소 1마리를 살 수 있던 셈이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은 경복궁 중건의 역사상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시민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될 것”고 말했다.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은 서울시청 ‘서울책방’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e-book으로 열람할 수 있다.

#경복궁중건천일의기록 #경복궁영건일기 #경복궁

 

kgt0404@urban11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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